만이 형님의 비망록

5월24일: 내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

고사황 2023. 5. 2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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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영화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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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활짝 핀 아름다운 꽃처럼 가장 화려했던 인생의 황금기를 뜻하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양조위 형님과 장만옥 주연의 홍콩 영화 제목에서 유래했다. 전성기 시절 왕가위 감독 특유의 미장센 감각과 배우들의 내면 연기가 돋보이는 명작이다. 

우리에겐 누구나 자기만의 화양연화의 시절이 있었다. 가장 행복한 이는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이 자기 인생 최고의 리즈 시절인 사람일 것이다. 
 
나도 내 인생에서 몇 번의 화양연화의 시기가 있었다. 
그 첫 번째 시기는 공군장교로 근무했던 4년간의 기간 중, 마지막 2년여이었던 거 같다. 박봉이지만 필요한 곳에 사용할 만큼의 돈으론 충분했고 업무적으로도 인정을 받던 시기였다. 사병으로 군복무를 먼저 마치고 회사에 다니던 대학동창들과의 술자리도 부담 없어 즐거웠고 휴가 때 군휴양소에 몰려가서 바캉스를 하던 기억도 새롭다. 군인으로 사회초년병의 자유로움과 간섭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장교라는 지위가 주는 설명이 곤란한 우월감 등등... 미래에 대한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람 있고 재미있게 보낼까?"만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다시 한번 돌아가 미친듯이 놀아보고 싶다.
 
두 번째 시기는 아마도 4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의 10여 년의 기간이었지 싶다. 사회적 지위도 올라갔고 남부럽지 않은 연봉에 돌싱으로서의 또 다른 매력에 빠져 지내던 호시절이었다. 좋은 옷, 좋은 차, 맛집 등을 순례하며 중년의 기분을 맘껏 뽐내며 다녔다. 이땐 이혼의 아픔도 거의 극복이 되었던 시기라 삶의 행복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자뻑이 하늘을 찔렀던 것 같다. 
 
마지막 세 번째 시기는 아무래도 현진이를 만나 주리 양 유학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셋이서 아니 처제까지 넷이서 시카고 네이퍼빌에서의 1년 동안 생활이 아니었나 싶다. 첨 가보는 미국 땅, 이국적인 분위기, 맑은 공기와 푸른 잔디들... 중간 중간 했던 미국 국내여행들 달라스, 윌밍턴, 라스 베가스, 샌프란시스코... 정말 꿈만 같았던 시기였고 다시 가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세 번의 리즈 시절 중 어느 때가 가장 좋았냐고 묻는다면, 다 나름대로 좋았다고 대답할 수 밖에는 없다. 나이와 시기가 달랐고 경제적 상황도 차이가 났으며 무엇보다 어디에 더 가치를 두었는지가 다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좋았다. 
 
이렇게 회고를 해보면 난 참 운이 좋았던 사람 같기도 하다. 남들은 인생에서 이런 화양연화의 시기가 단 한 번도 오지 않기도 하니까 말이다.
 
한 번도 안 올 거면 몰라도 한 번이라도 인생의 황금기가 올 거라면, 40대 이전의 시기보단 50대 이후 또는 60대 이후에 느지막이 오는 것이 행복감도 훨씬 크고 효용 가치도 높은 거 같다. 아무래도 인생 후반기에는 적막함, 고독, 외로움, 쏠쏠함 밖에는 안 남을 텐데 아다리가 딱 맞아 그 시기에 화양연화의 시기가 찾아온다면 당당하게 후반부 인생을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 제가 올리는 글은 원래 타이프라이터로 쳤던 글들을 텍스트로 변환해서 올리는 겁니다.
레트로 감성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원본파일을 열어보셔요.

5월24일 화양연화(1).pdf
0.45MB
5월24일 화양연화(2).pdf
0.27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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