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5일: 신언서판(身言書判)
신언서판 (身言書判)
몸 신, 말씀 언, 글 서, 판단할 판이다.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선발하던 기준으로 외모, 언변, 문장력, 판단력을 이르는 말이다.
잘 살펴보면 중요한 순서대로 글자를 나열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모든 능력 중에 외모, 허우대를 으뜸으로 치고 있다.
솔까말 정우성이나 김태희 급의 외모라면 공부를 잘할 필요도 없고 살아가는 데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도 다 자기 복록이요, 부모님에게 감사할 일이다.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처럼 얼짱이니 몸짱이니 해서 지나친 외모 지상주의로 흘러가는 건 좀 문제가 되겠으나, 어찌 됐든 훌륭한 신수(身手)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남보다 적은 노력으로도 인생성공을 거둘 확률이 매우 높다 하겠다.
아들 황주연 군은 지금은 식욕조절을 잘못해서 100킬로가 넘는 거구의 청년이 되었으나 기숙사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던 중학교 시절에만 해도 키도 크고 피부도 하얗고 인물도 좋아서, 공부를 못 해도 잘 살 거라는 칭찬을 양가할머니로부터 듣곤 했다.
아직 주연 군 입장에서 볼 때 인생 초반전이긴 하나, 넘쳐나는 식탐조절에 실패해서 지금은 그냥 귀여운 한 마리 곰이 돼버렸다. 인물과 허우대관리에는 성공하지 못했으나 아직 젊으니 언제든 다시 돌아갈 찬스는 많고 비록 살이 불어도 얼굴 살도 통통해져 오히려 선한 인상을 주는 건, 비만의 좋은 부작용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만 30이 넘어서도 체중 감량을 못 하고 100킬로 대를 유지하면 건강에 심대한 지장을 줄 수 있으므로 종종 잔소리를 좀 할 생각이다.
외모와 허우대도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하는 것이지만 소위 말하는 언변, 말 빨도 유전적 요인이 큰 거 같다. 언변이 좋다는 건 단순히 말을 많이 한다거나 두서없이 횡설수설하는 걸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수미상응(首尾相應)하게 말을 하되 재미도 있어야 하고 상대에게 감동도 선사해야 한다. 최근 유튜브에서 인기를 구가하는 마츠다상, 다나카상, 영국남자 등 1인 크리에이터들을 보면 외모와 언변이 동시에 받쳐주는 경우가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우리의 황주연 군은 다변(多辯)이긴 해도 달변(達辯)은 아니다. 가만히 놔두면 쉴 틈을 주지 않고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인다. 그래도 다변가는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추고 노력이 가미된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언변(言辯)가는 될 수 있고 말로써 밥벌이도 가능하단 점에서 주연이에게서도 약간의 희망이 보인다. 방통대 미디어 방송학과를 무사히 마치길 기원해 본다.
신언서판 중, 신과 언은 선천적 비중이 높은 거 같고 서와 판은 후천적 학습의 힘이 크게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서"는 "언"과 비슷하게 명필의 뜻이 아니라 주어진 주제에 대해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문장을 작성하는 능력이다. 조선시대 관리나 현재의 공무원, 회사원들은 매일매일 셀 수 없이 많은 공문서(이메일)를 작성한다. 여기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서". 즉 문장력이고 이는 교육을 통한 학습으로 얼마나 많은 지식을 쌓았느냐가 큰 작용을 한다.
판단력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루에도 쉴 새 없이 오고 가는 서류들을 읽고 결재하며 합리적인 판단과 선택을 하려면 해당 분야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더불어 기본적으로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분야의 전문 지식이 큰 역할을 한다. "서"와 더불어 "판"도 후천적 학습이 근본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학습(공부)의 기본은 암기다. 과거시험공부든 수학능력시험을 위한 공부든 간에, 모르는 건 닥치고 외우고 넘어가야 다음 진도를 나갈 수 있다. 달달 외우고 암기를 하다 보면 난해해 보이던 수학문제도 어느 순간 술술 풀리는 환희의 순간이 다가온다. 타고 난 외모 또는 언행에 자신이 없다면 열심히 공부에 정성을 쏟는 수 밖엔 없다. 그래서 순자도 그의 저서 첫 편의 제목을 권학(勸學)으로 하고 학문은 죽어서야 끝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나도 내일모레면 60세 환갑의 나이에 다다른다. 암기를 위주로 하는 공부를 하기엔 신체적 나이가 너무 들었다.
하지만 공부에는 암기 위주의 학습 말고도 몸으로 체득하는 공부도 있다. 마치 어린 아기가 자라면서 엄마와 교감을 통해 말을 배우는 것처럼. 답사, 여행, 자전거여행, 비박산행, 사진, 동영상 등등 체득 위주의 학습에는 많은 종류가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평생학습사 공부는 암기위주 학습에 속하지만 내 수준에 그리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어차피 시간도 남고 아내의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시작한 것이니 그리 큰 부담도 없다. 오는 7월에 강의가 종료되면 체험 위주의 학습을 계획하고 있다. 내 인생에 도움이 되고 안 되고를 생각할 땐 아닌 거 같아서 그냥 흥미 위주 내지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걸 골라보려고 한다. 현재로선 공유형 전기자전거를 이용해 동네 주변을 좀 돌아보고 속도감에 익숙해지면 조그만 스쿠터를 이용해 좀 더 먼 거리로의 왕래도 생각 중이다.
* 제가 올리는 글은 원래 타이프라이터로 쳤던 글들을 텍스트로 변환해서 올리는 겁니다.
레트로 감성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원본파일을 열어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