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5일: 금연
우리 아파트에서는 밤 8시쯤 거의 매일 나오는 안내 방송이 있다.
"관리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지난 4월 3일 7201동 앞 나무에서 담뱃불로 추정되는 화재로 인해 그을음이 발생하였습니다. 다행히 큰 화재로 번지지는 않았으나 우리 아파트에는 조경을 위해 많은 수의 나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자칫 큰 화재로 이어질 뻔한 사고였으므로 흡연자 분께서는 이웃과 환경을 생각하시어 흡연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뜻 보기에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는 방송이고 올바른 문장으로 보인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방송이 지금까지 거의 이삼일에 한번씩 나오고 있단 점이다. 그럼 그 사이에 또 다른 나무 화재 사건이 있었느냐? 아니다. 저 사건이 첨이자 마지막 사건이다.
그런데도 무슨 사골 곰탕도 아니고 이 사건을 왜 두달이 넘게 우려먹고 있는지 이제는 그 의도가 심히 의심스럽게 느껴진다. 관리소장이 소심한 사이코이거나 부녀회 또는 동대표들 중에 집착증을 가진 정신병자가 있음에 틀림없다.
해당 사고가 났을때 아파트 게시판에 사고 나무의 사진이 부착된 적이 있었다. 나는 하도 호들갑을 떨길래 나무가 반쯤 타서 폐사시켜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사진 속의 나무는 내가 보기엔 그냥 약간 그을렸네 나무가 좀 아팠겠다 하는 정도고 지금도 그 나무는 푸른 잎을 무성하게 키우며 잘 자라고 있다.
또 하나 저 방송멘트의 문제는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냐? 문제 해결의 답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흡연을 자제해 달라니 담배를 끊으란 말인가? 나무가 없는데 가서 몰래 피라는 말인가?
나무에 불이나서 홀라당 단지 전체가 타버릴까 봐?
우리 아파트에 소나무등 나무가 많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것도 불이 잘 붙는 소나무가 좀 많다. 그래서? 나무가 많아서 화재에 취약할 거 같으면 나무 화재에 적당한 소방장비/시설을 애초에 많이 구비해 두어야 하는 것이 올바른 해법 아닐까? 산불은 꼭 담뱃불로만 일어나지 않는다. 농사꾼들이 밥을 하기 위한 나무장작 불씨가 발화원인이 되기도 하고 건조한 날 자연발화 현상으로 산불이 나기도 한다 물론 담뱃불로 인한 실화도 있다. 관리사무소는 수많은 나무 화재의 원인 중 담뱃불 하나에만 집중하는 아주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정녕 나무 화재로 인해 아파트가 홀라당 타버리는 것이라면, 일단 소방장비 및 소방시설을 갖추자고 제안하는 것이 먼저다. 왜냐. 앞서 말했듯이 나무 화재는 담뱃불로만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불장난이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자연발화도 건조한 날에는 무시 못하는 원인이다. 하다못해 마른하늘에 벼락이 쳐서 하필 우리 단지 소나무에 떨어지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한가하게 방송만 하지 말고 정말 화재가 무섭다면 대책을 강구하란 말이다.
저 방송멘트를 이삼일에 한 번씩 내보내는 것이 관리소장의 아이디어이든 다른 입주자 대표자 회의 임원들의 결정이든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은 아파트에서 담배 피워 냄새 풍기지 말고 환경도 깨끗하게 유지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그래서 저 방송과 항상 세트로 나오는 방송이 바로 집안에서 흡연하지 말자는 내용의 방송멘트이다.
솔까말 청국장 냄새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생선 굽는 냄새에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독 담배 냄새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멀까? 그 냄새가 지독히도 싫은 이유도 있겠지만 담배연기가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비흡연자들이 극성을 떤 결과, 우리의 환경은 예상과는 달리 아주 지저분해지고 있다. 시내 중심가 회사 건물들이 많은 구역의 대로변 바로 한 칸 뒤의 뒷골목을 가보시라. 한여름에 종이꽃으로 눈이 내린 것 같은 환각을 보게 될 것이다. 그만큼 갈 곳 잃은 흡연자들이 건물밖으로 밀려나서 흡연을 하고 재떨이가 없으니 아무 데나 꽁초를 버린 결과다.
실내금연을 지정했으면 외부에 흡연공간은 고사하고 꽁초를 벌 수 있는 휴지통이라도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의 행정은 뭔가 앞뒤가 맞지를 않고 있다. 우리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저렇게 극성을 떤 결과 우리 흡연자들은 거기에 대한 반발심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 꽁초를 버리고 있다. 환경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담배를 끊으면 될 것 아니냐고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그건 내 자유고 당신이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