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 유치환의 행복이란 시(詩)가 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 로 시작하는.... 당시 국어 교과서에도 실리고 해서 꽤나 유명한 시이다.
대충 보면 남자 주인공이 어느 여인과 짧은 만남을 가진 후 차였거나 아니면 아예 남자의 일방적인 짝사랑인 것으로 보인다. 단지 아름다운 문장으로 포장이 돼있을 뿐 스토커와 비슷한 행태이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전래동화급 민간속설 중,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 등등 이상한 논리로 막무가내 돌격 정신을 강조하는 연애조언담이 많다. 가히 시라노 연애 조작단급 사기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랑이 있지만 모든 사랑에는 기본적으로 Two Way Communication이 전제가 돼야 한다. 양방향 의사소통이 된다는 건 일단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앞으로 만남을 통해 한 단계 높은 관계로 진전할 수도 있으며 아님 실망하여 헤어질 수도 있다. 상대방이 거부의 의사를 표현했으면 거기서 구애의 행동을 중지하는 것이 맞다. 이문열의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 보면 실연의 아픔을 달래주는 주옥같은 문장이 나온다.
자고로 놓쳐버린 버스와 떠나버린 여인은 쫓아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다 보면 또 다른 버스와 여자는 오게 마련이다.
사랑은 돌아온다고 하지 않는가. 똑같은 사람으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또 다른 사랑의 찬스가 생긴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너를 이만큼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고 하는 것은 사랑을 Give & Take라는 지극히 Business적 Mind로 접근하는 것이다. 서로가 사랑할 때는 단순한 이유만이 존재하지만 서로가 미워할 때는 다양하고 복잡한 사정들이 있다. 너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는 하소연에 상대방이 난감해하는 것은 너에게 여지(餘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너에 대한 복잡 미묘하게 싫은 감정을 몇 마디의 말로는 설명해 줄 수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는다. 가족, 동성친구 간의 우정, 이성 간의 사랑, 부부의 연, 시부모/처갓집과의 관계 등등..... 이 모든 관계의 기본이 되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의무적, 형식적으로 하는 사랑 말고 진심과 배려에서 우러나오는 사랑 말이다. 형식적이든 참된 사랑이든 사랑이라는 표현을 한다는 그 자체는 거룩한 일이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114 콜센터에서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평범한 단어도 아니고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할 단어도 아니다.
어느 유명한 스님이 유튜브에서 하신 말씀 중이 다음과 같은 법문이 있었다.
"대개 절은 도심 포교당을 제외하곤 깊은 산속, 시골에 존재한다. 때문에 열심히 절에 나오시는 처사님 보살님들은 근처 마을에 사시면서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고 이분들이 그렇게 기도와 공양을 열심히 하신다. 그러다가 가을 수확철이 되면 쌀과 농작물을 몇 킬로씩 가지고 와 공양을 하는데 그 양이 너무 많아 처치 곤란이 된다. 그래서 짜낸 아이디어가 그 쌀을 근처 쌀가게에 주고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절에서 가져다 쓰는 것이다. 가게는 쌀 재고가 늘어나서 매출액이 증가할 것이고 절은 쌀보관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어 좋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개념이 바로 이기적 사랑이다. 유치환의 행복이란 시에서 답장 없는 여자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는 것 , 나의 사랑을 알아다오 따위의 비즈니스적 사랑, 그리고 계절의 수확물을 직접 공양하는 처사님/보살님들은 모두 이기적 사랑의 예(例) 할 수 있다.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내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판단해서 베푸는 사랑인 것이다. 그나마 행복이란 시에서 남자는 적당한 선에서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며 단념을 선언했다. 찬양받아 마땅하다. 농산물을 낑낑대며 절로 들고 오시는 처사님 보살님들은 먼저 스님들과 상의를 해서 필요한 양만큼만 보시를 하는 것이 옳은 행동일 것이다. 반면 내 사랑을 돌려다오 식의 막가파식 구애는 상대 입장에서 보면 나는 네가 안 좋은데 나더러 어쩌라고? 하는 반발심만 생기게 한다. 여기엔 설득이고 뭐고 안 통한다. 살아가면서 피해야 할 유형의 사람이다.
난 지금 치매노인과 아내 딸 이렇게 4 식구가 합가 하여 살고 있다. 누가 가장 행복할 것 같은가? 내 생각엔 치매이신 우리 엄마다. 아무런 걱정도 없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들 무엇하는지 관심도 없고 하루종일 누워만 있어도 심심하다는 개념도 없다. 치매가 걸려서야 이 세상 속박에서 벗어난 표정이다. 그래서일까? 일 년에 가끔 아주 가끔 제정신이 잠깐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우리 사정을 보고 참 많은 고민을 하고 또한 지나치게 흥분도 한다. 다시 근심 걱정이 존재하는 불행한 세계로 돌아온 거다. 나의 치매 걸린 모친은 지금 무척이나 행복(이기적 행복)하지만 옆에서 시봉을 하는 가족들은 저 노인을 혼자 둘 수 없어 움직임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우리끼리 살았으면 아침은 대충 쨈 바른 빵에 우유. 점심은 라면. 저녁은 스팸 구운 거에 계란 프라이, 볶은 김치 가끔씩 다 때려 넣은 양푼 비빔밥이나 먹고 아주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입맛이 까다로운 엄마는 지금도 좋아하는 음식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이래저래 불만 투성이다. 이제 겨우 3년이 지났으니 앞으로 다른 종류의 갈등이 계속 간헐적으로 터질 것이다. 그때마다 내 심장은 또 벌렁거리고 진정제를 먹겠지... 내가 원래대로 대범하거나 이런 우울모드가 아니라면 그냥 언제나 그랬듯 짜증 한번 내고, 뒤돌아서서 잃어버리고 숙명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갈비사건 비슷한 게 벌어진다면 내 반응은 그때와는 또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게 나를 불안케 한다. 누나는 점심과 저녁때 거는 전화통화로 엄마의 상태를 파악하력 노력한다. 당연히 우리보다 정확하게 볼순 없어 자주 상황판단을 잘못하기도 한다. 너무 흥분상태라 이상한데 원래모습 같다고 하고, 조용하게 왔다 갔다 하며 지내면 너무 집에만 있지 말고 바람 쐬러 나가라고 한다. 자주 못 오는 미안함의 표현이리라. 최근 홍삼이나 공진단을 먹고 며칠 극도의 흥분상태를 보인적이 있다. 원인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전과 바뀐 건 저 두 약뿐이니 우린 일단 저걸 감춰버렸다. 아침에 먹는 혈압약도 누나와 상의해 줄여버렸다. 잘한 건지는 모르나 혈압도 내려오고 예전처럼 조용한 상태가 됐다. 이 또한 모친의 병상태를 전문의와 상의하지 않고 결정해 버린 우리의 이기적 사랑 아닐까? 우리가 편하기 위해 의사하고 엄마와 이야기 없이 실행해 버린 것이니 말이다.
이번에 분당 제생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마치고 하루 입원을 위해 노인할아버지들만 계시는 6인실로 배정받아 하룻밤을 지냈다. 여기서 난 자식들이 자기 부모에게 드리는 수많은 이기적 사랑의 사례를 목격했다. 아주 아주 기분이 나빴다. 안락사를 도입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과격한 생각도 들었다. 간병인들이 수시로 대소변을 받아내고 간호사들은 필요한 약을 주사하고 혈액을 뽑았다. 행동과 의사소통이 부자유스러운 노인들은 간병인과 간호사의 지시에 따르느라 심한 고생을 한다. 기분 나쁜 말도 들어야 한다. 보아하니 노인성 치매는 아니고 먼가 육체적 병이 있는 거 같았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저분들의 자식을 생각하게 되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적 여유도 되는 거 같은데 집에서 모시면 안 되는 걸까? 심지어 시한부 인생이더라도 자식집이나 자기 집만 하겠는가? 오래 못살면 어떤가. 저 정도 나이면 천수를 누린 거 아닌가? 지금 당장 저렇게 아파하는데..... 아마도 자식들은 도리를 다했다는 사회적 공의도 얻고 스스로도 "그래 난 최선을 다했어"하는 위안을 얻기 위함 이리라. 만약 저 노인들이 제정신으로 잠시 돌아온다면 "이렇게 사느니 편안히 가게 해다오"라고 하지 않을까?
이제 우리도 스위스처럼 어떤 식으로든 60세 이상 무직인 사람들에 대해 안락사를 허가해 주는 제도가 시행돼야 한다.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짐이 돼버린 숨만 쉬고 있는 존재를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의학의 힘을 빌어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부양을 해야 하는가? 이거 또한 이기적 사랑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기적 사랑의 사례는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 사랑의 왜곡된 이름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힘들어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식의 미래를 위해 몇 군데의 학원을 뺑뺑이 돌리거나 적성에 안 맞는 대학, 학과를 강요하거나. 우리 부모님은 유럽여행 한번 안 가보셨으니 어버이날 기념으로 유럽 여행을 보내드리자 라던가 ---> 그러나 부모님도 현찰을 제일 좋아하신다는 사실.
불교에서는 인생이 고통의 연속이라고 이야기하며 그 원인을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라 한다. 그렇다면 죽으면 끝나느냐? 아니다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다음 세상에 또 태어나 이번 생에서 겪었던 생로병사를 다시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해탈과 열반을 강조한다. 해탈을 하여 열반에 들면 윤회의 순환 고리에서 빠져나와 더 이상 인간, 신선으로 태어나지 않고 극락으로 가서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극락왕생을 성취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에 가기 위한 전제 조건은 자비이다. 조건 없는 자비의 실행이야말로 윤회의 속박에서 빠져나와 극락에서 영생을 얻는 조건인 셈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 모두 일맥상통하는 단어이며 공히 잘못 빠지게 되면 이기적 사랑이 되어버리기 쉽다. 이렇게 되면 천국은커녕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른다.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답이 있지 않을까? 이기적이지 않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조차 어렵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기적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글도 핸드폰으로 작성해서 타이핑 원고는 없습니다.
'만이 형님의 비망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5월30일: 영원회귀 (0) | 2023.05.30 |
---|---|
5월29일: 살인 (0) | 2023.05.30 |
5월 27일: Depression is a sickness (0) | 2023.05.27 |
5월26일: 분당 제생병원 (0) | 2023.05.26 |
5월26일: 용서 (0) | 2023.05.26 |